해가 빨리 지는 겨울이 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낙엽이 떨어져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보며 허전함과 상실의 감정을 느끼고 우리 몸에 비타민D를 생성시키기 위해 필요한 햇빛을 죄는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일상적인 슬픔, 실패에 대한 자괴감, 헤어짐에 따른 아픔, 지나간 날들의 후회와 관계 속에서 받는 상처, 아쉬움 등과는 다르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과도해져 예민해지고 고통이 지속될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상태가 우울증의 우울감인데, 고통에는 한없이 예민해지는데 기쁨에는 무감각해진다. 심해지면 현재에 대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진단
▲우울감 ▲무력감(만사가 재미없음) 중 한 가지 증상을 포함하여 ▲체중이나 식욕 변화 ▲수면 이상 ▲초조함 혹은 축 처지고 가라앉음 ▲피로감 및 에너지 감퇴 ▲무가치감 또는 부적절한 죄책감 ▲집중과 결정 내리기가 어려움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자살계획까지 총 9개 증상 중 5개 이상의 증상이 있으면 우울증으로 진단하며, 이런 증상이 있는 기간을 우울 에피소드라고 한다.
우울증과 조울증의 차이점
우울 에피소드가 오는 병 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 질환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울증이라고 알려진 주요 우울증과 양극성장애(조울증)이다. 주요 우울증은 우울 에피소드만 겪는 것으로, 우울 에피소드가 2주 이상 계속되면 주요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기분이 좋아지고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고 생각이 많아지며 자신만만해지고 계획이 많아지고 무모해지는 등의 증상이 심하면 조증 에피소드, 약하면 경조증 에피소드라고 하는데, 이런 조증(경조증) 에피소드를 경험하면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진단한다. 양극성 장애 때는 조증(경조증) 에피소드에 더해서 우울 에피소드를 경험하는데 전체적으로 우울 에피소드를 더 많이 경험한다.
우울증 심해져 조울증 된다는 생각은 잘못
우울증이 심해져서 양극성장애(조울증)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울증이 우울 에피소드와 조증(경조증) 에피소드가 번갈아 나타나는 질환이기 때문에 처음 우울 에피소드가 발생했을 때 이 병이 주요 우울증인지 조울증의 우울 에피소드인지 구별할 수 없다. 양극성장애의 첫 번째 삽화가 조증(경조증) 에피소드일 수 있고 우울 에피소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양극성장애의 첫 에피소드가 우울 에피소드인 경우가 70% 정도 되기 때문이고 조울증이 주요 우울증에 비하여 에피소드가 더 빈번하기 때문에 자주 반복되는 우울증이 있다가 조증이 나타나면 양극성장애로 진단되어 이런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첫 에피소드가 우울증 에피소드로 발병한 환자의 10% 정도가 경과가 지나고 보면 양극성장애로 밝혀진다.
피곤감과 에너지 감퇴를 느낀다면 우울증 의심
우울증 에피소드의 가장 많은 증상은 우울감이 아닌 피곤감 혹은 에너지의 감퇴(98%)이기 때문에 우울증임에도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로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통은 내과 등을 방문하여 통상적인 피검사 등을 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두 번째로 많은 증상은 불안감(96%)으로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주요 우울증에 걸리면 우울감보다 많은 증상이 불안감이다. 불안감이 심한 우울증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살시도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 상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 우울감은 아침에 심하다가 오후가 되면 좀 나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주요 우울증 치료약물 습관·중독 안되고 장기복용해도 안전
기본적으로 중등도 이상의 주요우울증의 치료는 약물치료가 원칙이다. 최근 20년간 항우울제가 발전하여 우울증의 치료가 크게 진보했다. 약물치료에 대한 걱정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항우울제는 습관성이 생기지 않으며 중독되지도 않고 장기복용이 신체적인 이상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임신 중에도 사용이 가능할 만큼 안전하기 때문에 복용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보통 증상이 호전되는 데 6~8주가 소요된다. 약을 먹자마자 우울 증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해열제나 진통제와 같이 먹는 즉시 증상이 나아지는 약이 아니므로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전되면 적어도 증상이 없어진 후 6개월 이상 약을 계속 복용해야 하고 약을 중단하면 금방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6개월 이후에는 약을 중단할 수도 있고 계속 먹을 수도 있다. 계속 복용하는 이유는 항우울제가 안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울증이 재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울증의 증상이 심하지 않고 처음 우울증을 경험한 경우라면 약을 중단해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러 번 우울증을 앓았거나 증상이 완벽히 좋아지지 않고 일부 증상이 남아있거나 우울증의 시기에 자살시도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면 수년간 약물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조울증 감정의 진폭 줄이는 약물로 치료
양극성 장애(조울증)와 주요 우울증의 우울 에피소드 치료는 기분안정제 사용에서 차이가 있다. 기분안정제는 조증(경조증) 에피소드를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우울 에피소드를 치료한다. 개념적으로는 감정의 진폭을 줄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증(경조증) 에피소드일 때 기분안정제를 처음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우울 에피소드가 오면 기분안정제를 줄이거나 중단해야 기분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해서 약물을 중단하여 더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 기분안정제와 함께 항우울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양극성 장애에서 항우울제만 사용할 경우 조증(경조증)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안정제도 습관성이 생기거나 중독되지 않지만 임신 중에 사용할 수는 없다.
우울증과 조울증 치료법 다양
이외에도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다. 대표적인 치료법인 면담치료도 우울증이 심하지 않거나 성격구조에 문제가 있는 경우 도움이 된다. 아쉽게도 면담치료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치료자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위험 증후를 간과할 수 있다.
최근 각광받는 치료로 반복 경두개 자기자극법(rTMS)법이 있다. 자기장으로 뇌의 일정 부위를 반복적으로 자극해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인데 약물치료에 더해서 사용할 수 있고 부작용이 거의 없고 안전하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다.
생활 속 우울증 대처법
스트레스 극복에 도움을 주는 방법들이 우울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데 특히 운동이 좋다. 또한 동료들과의 친밀한 소속감은 자신이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술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고통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술은 감정 조절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자살할 때 음주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술을 마셔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다. 수면제가 술보다 몸에 나쁘다고 생각해서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는 것은 위험하다. 술은 신체적으로도 위험한 발암물질이며 정신적으로는 중독 물질이다. 이외에 휴식과 규칙적인 생활이 도움이 된다.
주변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면 치료를 받도록 적극 권유하고 약을 잘 복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증상에 대해 비난하지 말아야 하고 어려움을 충분히 들어 주지만 섣부른 위로는 하지 않아야 한다.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지만 조급하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특히 자살의 위험에 대하여 예민해야 한다.
주요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질병이다. 또한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며 빨리 낫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비교적 치료가 어렵지 않은 병이지만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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